[자작] 변명거리

아, 시험기간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제 2주 후 시험, 교무실 출입 금지같은 것이 아닌, 시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또한 정상적인 학생이라면 지금쯤 참고서와 교과서를 펼쳐가며 고군분투 중일 테지만, 나는 그런 것은 없었다. 어차피 그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은, 참고서가 아닌 핸드폰을 만지려고 하는 자기 자신일테니, 하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도 이유는 충분히 있다. 충분히 갖다붙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회사원이 맞지 않는다든가, 어차피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든가, 시험 몇 과목 망쳤다고 내 머릿속 꽃동산이 파괴되는 것은 아니라든가 하는 충분한 현실도핏거리들.

어차피 공부따윈 나와 인연이 없었다. 참고서 하나를 살 돈이면 S팀에서 3~4개정도의 게임이 구매가 가능하고, 자신의 지식을 늘려주는 또다른 수단을 선택할 수 있으며, 뇌의 휴식이라는 이유를 갖다대며 만화와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확실히 1+1=2, 2×2=4 등의 간단한 것들을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상태 따위, 기업의 온갖 횡포 따위를 내가 왜 알아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란 말이다. 내가 그런 것들을 알아서 어떤 이득이 있지, 왜 이런 것들이나 배우러 학교에 오는 거지, 마케팅 전략을 모르면 회사가 아닌 편의점에서 알바를 못 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같은 생각들도 가능할 것이다.

선생님들, 부모님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 너는 공부를 왜 하니. 우리는 대답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그래도 다들 속으로는 학교에서 가르치니까요, 하고 생각하고 있지 않겠는가. 가르치니까 배우고 가지 않을 수 없으니 간다. 그것뿐이지 않겠는가.

언제나 학교에선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지만, 사실 다들 점심시간의 친구들과의 카드게임을 기다리지 않겠는가(물론 특이한 케이스, 극단적일지도 모르는 일이겠지만.(심지어 트럼프 네 패를 모아 마작도 하곤 한다)). 수업 종이 울리면, 어느 때와 같이 계속 잡담을 하며 자리에 앉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실 때까지도, 혹은 들어오신 후에도 계속해서 떠들 것이다.

그렇게 자유분방하고 활기차게 지내왔던 우리에게 갑자기 시험 공부라니, 이게 말이 되겠는가.

모 게임의 대사를 인용해보자. 공부 그 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 공부를 거머쥔 책을 두려워할지니(하스스톤 참고). 그렇다, 우리는 공부를 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귀찮고, 번거롭고, 졸리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계속해서 말을 듣더라도 참고서를 활용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있나. 필자는 여느 때와 똑같이 이 글을 쓴 후에 책상에 앉아 수학을 공부할 것이고, 여느 때와 똑같은 밤을 지내며 똑같이 학교에 가, 일상과는 조금 다를 시험을 친 후, 빨리 끝났다고 좋아하며 아직 남은 시험을 무시한 채로 PC방으로 뛰어갈 것이다. 그럴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글을 적어, 내가 왜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조금이라도 알아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알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기분이지만.

그럼, 책상으로 걸어가자. 인생을 포기한 사람이 옥상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으로.